Home > 회사소개 > 대표이사 이야기
정보
제목 [이야기] 히말라야 리조트호텔의 꿈
작성일 2009.04.17

히말라야 리조트호텔의 꿈


1984년 겨울에 행운의 기회를 잡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반했다. 사실 등반이라기
보다는 혹독한 히말라야를 경험하고 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 이다. 24살의 젊은 클라이머에
게 겨울의 에베레스트 등반은 높은 고도와 혹한, 빙벽 그리고 강한 바람 등의 장벽들로 오르기에는 너무 높았고, 체력과 기술 조차도 모자랐다.

국내 산이나 잘 오르는 우물안의 개구리임을 절실히 느끼고, 다시 2년을 준비하여 8,848m 보다는 다소 낮은 7,450m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을 등정했다. 등반 자금을 모으려고 힘들기는 했지만 강도 높은 훈련과 에베레스트 등반경험을 바탕으로 등반은 멋지게 성공을 했다.

그때가 아마도 나에게는 등반실력이 최고로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던 것 같다. 북한산의 인수봉, 도봉산의 선인봉에서의 암벽등반은 최고의 그레이드를 올랐고, 겨울이면 설악산, 지리산을 비롯 백두대간의 여러 산들을 등반했다. 도시에 있는 시간보다 산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고, 생각의 대부분을 등반에만 몰두했었다.

1986년 여행사에 취직을 했던 것도 히말라야를 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으며, 여행사를 그만 둔 것도 히말라야를 안 보내줘서 였었다. 이후에는 아예 히말라야에 가서 살자는 생각으로 집까지 팔고 1988년에 네팔로 이주했다...

네팔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빨리 지나갔다. 히말라야의 여기저기를 많이 다녔고, 별의 별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때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현재의 석채언이 있게 까지 도움을 주시고, 정신적으로 기둥이 되어 주신 분 들이며 아직까지 인생의 멘토로 인연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히말라야를 대상으로 거짓을 일삼고, 순수한 산악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가오기에 상처를 입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도 없다.

내가 가장 크게 실망한 경우가 말하고자 하는 ‘히말라야의 리조트호텔’ 사업의 꿈이었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아름다운 리조트를 짓고 장엄한 히말라야를 더욱 가까이 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이 늙고 노쇠해서 걷기 어려울 때에도, 히말라야의 리조트호텔에서 아침 일찍 해맞이부터 온 하늘이 붉게 물드는 저녁때까지, 보석처럼 빛나는 히말라야를 보면서 좋은 사람들끼리 담소를 나누며 술 한잔하는 낭만은 너무 멋있을 것 같았다.

어느날 그런 꿈을 설계해 주고 나아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주고, 같이 해 보자는 사람이 네팔에 왔다. 그는 한국의 제천과 통영에서 크게 콘도사업을 하는 사장이었으며, 나와는 실크로드를 같이 여행한 사람이었다.

모든 일을 제치고 정말 성심을 다해 리조트호텔의 건립을 위해 일을 했다. 아름다운 안나푸르나 히말라야의 파노라마가 한 눈에 펼쳐지는 가장 좋은 땅을 정말 좋은 가격으로 매입하였고(20명이 넘는 땅주인을 설득하고), 혜초의 모든 조직을 이용해서 리조트를 짓는데 최선을 다 하였다. 나는 직접 땀 흘려가며 리조트의 진입로에 편편한 돌을 깔아 진입로를 만들었고, 거머리에 수없이 물려가며 숲속에서 물길을 찾아다니면서도 꿈을 이룬다는 생각에 즐거워했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여 리조트호텔 열채와 클럽하우스가 지어졌다. 그동안 네팔에서 만들어진 인맥을 모두 동원해서 우리의 소규모 투자금으로는 불가능했던 100% 외국인 지분의 사업허가서와 등기를 마쳤고, 최고의 매니져와 최고 실력의 네팔인 한식요리사까지 데려다 놓았다.

이제는 정원을 가꾸고, 오시는 고객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면서 2차 추가 리조트건립 3차 추가 리조트건립..모두 40채를 짓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나에게 히말라야 리조트호텔의 꿈을 준 사람이 갑자기 변하게 시작했다. 오해를 만들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나를 치사한 사람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네팔은 마오이스트의 영향력 확대로 정부와 소규모 분쟁이 자꾸 일어나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했고, 관광객은 급격히 줄었다.

나를 헤어진 이산가족 만난 듯 늘 반가워하던 그 사장은 리조트호텔 오픈이후 이제는 나를 귀찮은 불청객 대하는 투로 바뀌었다. 계속해서 뭔가 자꾸 안좋은 방향으로 꼬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는 그 사장과 만나는 것도 어려워졌고, 만날 수도 없었다.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런 멋있는 꿈을 들려주고, 모든 자금을 투자하였으며, 경험이 풍부한 기술자를 제공한 것은 물론, 살아가는 방향을 제시한 분인데... 혹시 내가 바보처럼 스스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큰 결례나 잘못을 한 것은 아닐까...

결국 나는 약속한 리조트호텔 사업의 운영권과 내가 일한 몫으로 받은 20%의 지분을(늘 돈이 모자랐던 때이라 지분보다는 돈을 원했지만 그 사장님의 강력한 요구로 지분을 받았었다.)포기하기로 결심을 했다. 사실 너무 아쉽고 한편으로는 정말 열심히 매달려 일을 한 나의 보수를 포기하는 것에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 너무 치사하여 나의 자존심도 많이 상처나 있었으며, 만나주지도 않고, 험한 말이 들리고, 소인배로 몰고 가니...어쩌겠는가. 어짜피 나의 떡이 아니다 라는 생각과 리조트호텔 사업에 대해 많이 배웠다는 것에 자위를 했다.

그 사람을 겨우 만나 사장님이 나를 불편해 하시니 나는 리조트 사업에서 모두 포기하고 사업에서 떠나겠다고 말을 하자 그 사장은 전혀 엉뚱한 얘기를 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자기의 재산을 지키라고...그런식으로 사니 성공할 수 없다...등으로 나를 혼내고 때로는 설득했다.

그 설득과 충고에 감동하여 역시 나의 오해였으며, 정말 좋은 분이라는 생각과 짧은 나의 판단으로 그 분에게 실망을 주었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원망까지 했다. 그 분은 리조트호텔 운영은 마오이스트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하면 된다고 했으며, 그때를 기다리자고 했다.

시간은 흐르고 마오이스트의 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흐를때에, 우연히 리조트호텔의 소유권 등기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등기에 있었던 나의 지분 20%는 삭제되어 있었다. 자초지정을 확인해 보니 가끔 네팔을 방문하던 그 사장 딸의 소행이었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나는 또 혼동에 빠졌다. 뭐가 뭔지...그냥 달라고 해도 줘버렸을텐데... 아마도 어지러운 네팔의 정세 때문에 나의 역할이 더 필요했다고 생각이 든다. 그것도 모르고 리조트호텔을 지키기 위해 마오이스트와 만나 협상을 하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등등....

정말로 세상을 이상하게 사는 사람이다. 물론 네팔에서 나의 영향력으로 모든 것을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겠고, 합법적이지 않은 사항들도 너무쉽게 모두 밝힐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리조트호텔의 운영권과 20%의 지분을 양도한다는 계약서가 내 손에 있다. 그 당시 같이 고생했던 네팔의 동료들이 나보다 더 화가 나서 법대로 처리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으로 리조트호텔과 그 사장을 최악의 상태로 만들겠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그런 사람을 법정에서 조차 만나기 싫었고, 다시는 내 인생에서 만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그 사람과의 인연을 잊기로 했다.

네팔 동료들과 함께 그 사장을 엉망이 되도록 한들 결국 한국인의 망신과 신뢰추락으로 한국인 모두가 피해를 더 입는다는 판단이었다. 네팔 법정에서 한국인들 간의 재판분쟁이라니...더 한심해 지겠지....네팔 동료들을 어렵게 설득하고, 내가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 더 좋은 히말라야 리조트를 짓겠다는 약속을 했다.

결국 히말라야 리조트호텔의 꿈은 그렇게 왔다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 젊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다양한 경험과 좋은 친구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멀지않은 미래에 그림같이 아름답고 아늑한 히말라야 리조트호텔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 이상한 사람의 리조트호텔 보다 더 좋은 리조트호텔의 장소는 찾아 놓았다. 훗날 히말라야 리조트호텔이 지어지면 친구들과 지인들을 모두 초대하고 싶다. 별이 총총한 히말라야의 밤하늘 아래서 충만한 넓은 마음으로 끝없이 웃고, 떠들고,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