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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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재
- 2026-01-05
- 출발일자 2024.08.15
남알프스 종주 + 후지산 등정 6일
2024년의 한여름, 저는 다시 한번 일본의 산군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여정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기타다케를 품은 '남알프스'와 저에게는 두 번째 만남인 '후지산'을 잇는 5박 6일의 대장정이었습니다. 8월 15일부터 20일까지 이어진 길 위에서, 저는 산의 웅장함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인간의 의지와 사랑을 마주했습니다.
남알프스의 능선은 거칠고도 아름다웠습니다. 구름이 발치 아래 깔렸다가 순식간에 시야를 가리는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겹겹이 쌓인 산맥의 파노라마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어진 후지산은 두 번째 방문이었기에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었지만, 산은 매번 다른 얼굴로 저를 시험하곤 했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제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흔든 것은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팔에 장애를 가진 아버님과 그 곁을 묵묵히 지키며 함께 산을 오르던 아들의 뒷모습이었습니다. 험준한 바위 너덜길과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경사로에서, 아버님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한 걸음 한 걸음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속도에 맞춰 자신의 보폭을 조절하며, 때로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때로는 조용한 응원을 건넸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며 거친 숨을 내뱉고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그 어떤 영봉의 일출보다도 찬란하고 고결해 보였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정신으로 극복하는 아버지의 숭고한 의지와, 그런 아버지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동행하는 아들의 효심은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마저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산이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하산길에는 갑작스러운 소낙비가 쏟아졌습니다. 거세게 내리쬐던 볕이 사라지고 빗줄기가 온몸을 적시는 가운데, 미끄러운 길 위에서도 두 부자는 서로의 손과 마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맑음 뒤에 찾아온 흐린 하늘과 비바람은 마치 우리 인생의 굴곡 같았지만, 그들은 그 비조차 여정의 일부로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제 머릿속에는 옥색의 남알프스 능선이나 후지산의 거대한 분화구보다 그 부자의 실루엣이 더 깊게 남았습니다. 이번 산행은 저에게 단순히 높이 오르는 법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보폭을 맞추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행'의 의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러 떠난 길에서 인간애의 경이로움을 발견한, 참으로 감사하고도 벅찬 2024년의 여름이었습니다. 그 부자가 보여준 감동의 드라마는 제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삶의 '험산' 앞에서도 큰 용기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