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에베레스트/칼라타파르 트레킹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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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10.31 |
작성자 | 이*화 |
상품/지역 | 트레킹히말라야 |
에베레스트에는 무엇인가 있다 페리체 평원을 지나 위로 올라갈수록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없다. 그것은 단지 고도 때문만은 아니다. 산에 들어가면 날이 갈수록 모든 신경이 바늘 끝처럼 살아 일어나 떨면서 춤춘다. 나도 모르게 온 신경을 집중하며 한발 딛고, 한 호흡 하는 순간순간에 몰입하게 된다. 그래서 지친 육신이 까무룩 초저녁 잠을 자고 나면, 침낭속에서 뒤척이다 견디지 못하고 삐걱대는 나무문을 몰래몰래 빠져나왔다. 별빛이 이마 바로 위에 와락 덤비듯 날카롭게 번뜩이는 뜰 안에서 온몸이 굳어져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서 있다가, 다시 검은 돌담을 더듬으며 지칠 때까지 서성였다. 그것은 낮보다 더 괴롭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산란케 하던 그 모든 것이 잠든 가운데 오직 나 자신과 마주대하는 간절한 순간이었으므로 나는 그 괴로움을 충분히 즐겼다. 어둠 속에서 검둥개 한 마리가 다가 와 내 옆에 가만히 앉았다. 그의 등에도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밤은 낮과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이고, 온갖 밤의 소리들에 귀기울이며 우주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나를 바라볼 수 있다. 낮 시간에 돌길을 괴롭게 오르다가 야크 떼를 비켜서 숨을 고를 땐, 고난을 자초한 수도승처럼 저절로 번민의 매듭이 풀어지고 처연한 기쁨으로 마냥 웃음짓게 된다. 귓가에 은발을 날리며 가쁜숨을 토해내는 어느 북국의 노인과도 오랜 친구인양 한숨같은 '나마스떼'를 나누며 위로받는다. 이 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같아진 것 같고, 하나가 된 것 같아 행복하다. 어쩌면 포터들이 나를 두고, 실실웃고 다니는 헤프고 이상한 한국아줌마라고 저들끼리 비웃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들 어떠랴. 그들은 옛 고향의 까마득한 친척 동생이거나 조카들처럼 어리고 순하다. 내가 먹고 싶지도 않고 잠자고 싶지도 않은 것은 저절로 환희와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는 히말라야가 지닌 어떤 마법같은 힘 때문이다. 그곳은 그 무엇인가 사람을 사로잡고 홀려서 새로운 세계의 환상에 사로잡히게 한다. 고락셉,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산꼭대기서 무너져 내려 아무렇게나 뒹구는 바윗돌과 귓전에서 찢어지는 바람소리뿐이다. 해발5140미터, 산소가 희박해서 외지인들은 고형물을 삼키기 어렵다. 누룽지 국물만 마시며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멍하니 눈앞에 구름들이 노는 모양만 쳐다봐야한다. 내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서 절대경지인양 무념무상의 지극한 마음의 평화에 잠겨들 수 있다. 내 안에 그 무엇인가 충일감으로 차 오르고 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맘놓고 즐겁다. 이런 곳에서는 누구라도 수행정진하는 마음으로 경건해지고, 절로 겸허해지고 오직 진지해진다. 돌과 바람밖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텅비어 있기 때문에 붉은 흙먼지조차 일지 않는 황막한 곳이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 오래전부터 선잠을 자며 악몽으로 몸부림 칠 때 꿈속에서 늘 혼자 헤메었던 것과 꼭 같은 바로 그 장소다. 그래서 너무 행복하다. 어쩌면 전생에 이곳에서 고행하는 순례자였을까. 금욕과 고통을 통해 초월을 꿈꾸는 힌두교 성자였을까. 아무튼 이곳은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나를 현실에서 뿌리 뽑아 내동댕이 치고, 죽어 없어진 줄 알았던 내 안의 순진무구한 진짜 나를 되 살려 낸다. 일행이 칼라파타르로 일출을 보러 갔을 때, 난 아무것도 없는 그곳으로 다시 가보았다. 사방으로 애워싼 설산에 비쳐서 길은 하얗고, 주변엔 아무것도 아무도 없으니 난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어제 다녀 온 길이라 그런지 길은 길게 이어지고 내 앞에서 고요하고 평평하다. 해뜨기 전의 산엔 바람도 구름도 숨을 죽여 시간이 정지되고, 푸르른 새벽공기는 따뜻하고 온화하다.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갈갈이 찢겨진 내 가슴의 상처에 새살이 돋는 듯 가만히 평화가 차 오른다. 비로소 호흡이 자유롭고 팔다리를 잊을 만큼 내 몸은 가볍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고 오직 기쁘다. 크레바스가 녹아내려 옥빛 호수를 이룬 곳에서 영원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고 싶었지만, 일행이 롯지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발을 돌려 내려왔다. 밤서리에 하얗게 얼어붙은 이끼며 낮은 풀꽃들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발을 옮긴다. 절대침묵에 잠긴 고락셉 골짜기에 뒤통수를 치는 '꾸구우웅.....'소리가 들린다. 조금 전 내가 지나왔던 저 먼 산봉우리 발치에서 푸른 눈사태가 자욱이 밀려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양 고요했다. 여기가 창세기에서 말한 태초의 바로 그곳일 것이다. 맞은편 산 위에서 불에 달군 칼끝 같은 햇빛이 번쩍한다. 쇳물이 뚝뚝 돋는 날카로운 삼각 봉우리에서 아침은 서서히 아래로 내려온다. 계곡에 깊이 깔린 검은 장막을 밀어내며 신령스런 붉은 눈빛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 눈빛은 누구편도 아니고 오직 공정한 우주의 섭리다. 나는 오색 룽따 아래서 붉은 영봉을 향해 성호를 그었다. 도시로 돌아가서도 단 한 순간이라도 내가 신의 심판의 눈, ‘다르마’를 잊지 않게 해 달라고....... 롯지 근처에는 야크똥을 태우는 매케한 연기가 자욱이 깔리고, 아침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포터들의 이야기소리가 ‘라-라라’하며 맑은 개울물의 노래소리처럼 들려온다. 이 곳 사람들은 새까만 얼굴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언제나 눈부시게 웃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나 역시 연신 햇살처럼 웃음이 나오니까. 이 곳에 오면 누구나 이렇게 되는 거 같다. 어느새 사람의 마음을 청정하게 씻어주고 신성한 존재로 끌어올려 순수한 기쁨으로 채워준다. 히말라야엔 그런 마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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