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Punhill(푼힐전망대)&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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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05.04 |
작성자 | 신*현 |
상품/지역 | 트레킹히말라야 |
윤 익희 이사께서 손수 찍은 사진에 위트 넘치는 주석을 달아서 올린 아흐레의 산행기록의 일원으로 푼힐과 안나푸르나를 다녀 왔습니다. 여행지에서 돌아 온 뒤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여행기간 중에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 그 중 일부를 --산행을 같이 했던 친절한 마음들의 일행과 --선한 눈빛의 식사 담당, 포터, 가이드들과,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 혜초와 나누고자 고마운 뜻으로 후기로 올리고자 합니다. 전체 일정은 윤 이사께서 사진과 함께 요약을 하셨기에 제가 느낀 부분만 발췌하여 올립니다. 읽으시면서 누군가 잘 생각이 나지 않으시면 일행의 뒷쪽에서 항상 헉헉거리던 이가 있었음을 기억해 내시면 바로 그게 제가 틀림 없습니다. 여행을 같이 했던 분들의 행운과 혜초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전략) ABC 는 분지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안나푸르나 주봉과 남봉, 마차푸차레, 닐기리, 강가푸르나등의 연봉이 둘러싸고 있다. 각각 의연하고 고고하다. 바다가 없는 곳에서 바다색깔을 향해 아주 높이 솟아있다. 서로 껴안고 이어지는 연봉들은 나그네를 감싸 안아 설산 속에서도 포근하며 어느 곳에 눈을 두어도 찬탄이 이어진다. 각각의 산들의 구체적인 모양들이 선하게 들어와 몇 걸음 하지 않아도 곧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만큼 설산들은 가까워 보이고 더불어 친근하다. 그러나 산들의 정상은 지금 발 딛고 서있는 높이인 4,130 미터의 곱절만큼이나 높은 곳이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아야만 하는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가파르고 날카로운 비탈은 바위산의 맨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풍설(風雪)의 세월이 깎아 낸 모습은 단아하다. 군더더기는 이미 던져버렸다. 간간히 눈을 품고 있어 윤곽이 대비되니 면목이 더욱 뚜렷하다. 산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나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흘러내린 눈이 모여 산자락에 빙하를 이루고 간혹 거무튀튀한 색깔의 자갈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빙하 위에서 세월의 흐름을 기다리고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조용하여 자유스럽고, 치장 없이 담백하다. 바람을 맞아 머리끝에서 표표히 날리는 눈발이 무언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거인을 떠올리게 한다. 저 자리에 서서 다만 바라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밀어(密語)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영원(永遠)을 꿈꾸는 것은 영생(永生)을 바라는 것과는 다르다. 있는 자리에 그대로 남으라. 비교하지도, 부러워하지도 말고, 다만 너를 지키며. ABC 롯지의 뒤편, 소박하게 만든 기념탑에는 산을 오르다 명을 달리한 이들을 기념하는 사진과 글이 붙어 있고 오색으로 펄럭이는 룽다가 히말라야의 바람을 타고 그들에게 전하는 안부를 전하고 있다. 무엇을 얻어 속세의 때 묻히기 싫었기에 서둘러 하늘나라로 갔을까? 고도 약 1,800여 미터를 내달아 밤부(2,310)까지 일순에 왔다. 한라산 정도의 높이를 아래로 주파한 것이다. 내려오면서 놀랐다. 과연 내가 이 길을 올랐었단 말인가? 그 가파른 경사를 , 그 먼 거리를 올랐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뿌듯했다, 겁먹은 채로 시작하고 빌빌거리며 오른 결과가 놀라웠다. 그랬다. 작은 걸음으로 걸은 거리는 상당했다. 논리로 계산하는 그 이상의 실재(實在)가 몸 구석구석을 따스하게 했다. 발로 시작한 일이 머리와 가슴을 휘저었다. 사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길은 언제나 거칠었고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몰랐다. 세상살이 구속의 끈은 질겨 감당해야 할 생활의 무게는 언제나 중량을 초과했다. 수시로 자존(自尊) 이전(以前)의 문제가 괴롭혔으며 무언가 모자라는 형편에서 목마름과 조바심은 쉽게 풀리지 않는 실타래 같았다. 예상할 수 없이 주어지는 무거운 상황은 이어지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굴레를 벗어나지도, 큰 걸음 떼지도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운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안나푸르나 주봉과 이어진 높은 봉우리들이 떠올랐다. 바위산과 눈과 빙하와 자갈밭 말고 다른 무엇을 가지고 있던가? 언제나 바람을 맞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모습만으로 의연한 고절(孤節) 밖에는. 살아 온 길은 유장했으며 강인함을 안고 있었다. 별 것 아닌 하루를 모아 여기까지 왔고 돌아 온 날을 되돌아보니 허름한 것이 아니었다. 나름 잘 살아 왔다. 자신이 흐뭇해 졌다. 산다는 것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걸어서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 한 걸음에 많이 가는 것 보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인내심으로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 이번 산행도 그렇고 인생도 여기까지 잘 오지 않았는가. 앞으로도 잘 갈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이제 히말라야라가 품은 넓이와 깊이를 받아들인다. 내 걸음으로는 평생을 다해도 모자라는 그 포용을 인정한다. 작은 이름들인 안나푸르나, 푼힐, 마차푸차레도 의미는 있지만 그런 봉우리들을 모두 끌어안은 히말라야가 더 정겹다. 그러니 그냥 히말라야라는 큰 이름으로 간직하려고 한다. 바람으로 눈발을 항상 날리면서도 의연한 봉우리들도, 모디 콜라(=강) 의 계곡을 타고 흐르던 회색빛의 물길들도, 언덕에 힘들게 올라서면 땀을 식혀주던 바람들도, 햇살에 더 눈부셨던 눈 덮인 능선들도, 함석지붕을 요란하게 연주했던 우박들도, 무거운 짐을 지고 뛰는 선한 눈빛의 포터들도, 수줍게 핀 아주 작은 들꽃들도, 먼저 스쳐간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지던 반질거리는 돌계단도, 자리 잡은 곳보다 사는 의지가 더 중요함을 알려준 나무들도, 가파른 내리막으로 까먹는 고도를 안타깝게 했던 계곡들도, 꾸르릉 소리와 함께 산비탈을 순식간에 내려오던 눈사태 나는 모습도, 푸르러서 맑은가 맑아서 푸른가 헷갈리게 하는 청명한 하늘도 , 눈길과 설산을 자연스레 품어주는 눈안개의 몽롱함도, 심장과 귀속을 쿵쿵 울리던 헉헉거리는 숨소리도, 천길 가파른 절벽을 두려움 없이 떨어져 내리던 폭포들도, 산길에 푸짐한 소똥과 말똥들도, 그리고 그 냄새도, 두 손을 모으고 sweet? 를 원하는 아이들도, 끝없이 가파르게 이어지기만 하던 거친 돌길들도, 롯지 칸막이를 넘어 들리던 코고는 소리도, 바람에 날리는 행운을 비는 오색 깃발들도, 코 풀일 한번 없었던 맑은 공기도, 나마스테라는 아주 정겨운 인사말도, 머리 위에서 더욱 크게 다가 온 새벽 별자리들도, 목적지에 다다르자 쿵하고 앞에 우뚝 선 멋진 봉우리들도, 아 ! 이러다가 숨이 모자라 죽는 건 아닌가 하던 고산의 증세도, 비행기에서 바라 본 장대한 연봉들의 파노라마도, 그 모두를 다 담은, 크고도 넓은 품인 히말라야라는 큰 이름 속에 담고자 한다. 여행 기간 동안 스쳐지나간 것들을 생각해 본다. 애틋한 것도 있고 건성으로 지나친 것도 있으나 다시 만나기는 어렵겠지. 아마 나 없는 동안에 피고 져버린 벚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못 만난다 한 들 모두가 아름다웠다. 비록 시간이 흘러 약간 희미해진다 하여도 정겨움으로 남으리니 히말라야처럼 모든 것을 품어 안는 여유와 풍족함을 가지리라. 더불어 걸으면서 내내 짚어보고, 떠 올리고, 반성하며 깨달았던 생각들이며 숱한 계단을 밟으면서 불렀던 이름들과 그들을 위한 기도가 모두가 내 삶의 화두들이려니 별빛 아래에 서면 가끔씩 되짚어 보리라. 높이 오르려면 땀을 흘려야 하고 가벼운 차림이 먼 길을 허락하며 작은 걸음이 모여서 장대하고 짧은 하루가 축복임을 알게 해 준 이번 여행을 감동이 감사로 자라고 숙명이 은혜로 일깨워지기를 바라며 먼 길을 같이 걸어 준 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