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Silkroad 기행문-6(敦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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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05.15 |
작성자 | 김*균 |
상품/지역 | 문화역사탐방실크로드 |
어제 먹은 음식인지 물인지 뭐가 잘못 된 것인지 밤중에 화장실을 다니느라 밤잠도 설친다.삼장법사 일행이 오아시스 연못에 다다르니 물속에서 용이 나타나 법사가 타든 백마를 삼키고 괴롭혔다드니 우리라고 그냥 보낼수가 없었든 모양이다. 어제 오아시스 에서 뭔가 불결해 보이는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깨으럼직 하드니 마술에 걸린 모양이다.설사가 아니라 관장약을 먹은 것 처럼 물총 속도가 소방호스에서 불끄는 것 같다. 손오공의 여의봉(정로환) 덕택에 급한 불을 끄고 정신을 좀 차리니,호텔 방 실내 디자인이 보통 신경 쓴 것이 아니다.나무 기둥,나무 판자 모양의 천정. 완자무늬의 가구,특히 커튼의 색갈이며 모양이 라마승의 法服을 연상 시키며 여기가 바로 불교전래의 역사적인 현장이라는 것을 암시하고있다. 식사하기 전에 얼른 한장 스케치를 한다.어제는 밤중에 도착하여 몰랐는데 아침에 호텔을 나서자 바로 鳴沙山이 뒤로 가깝게 보인다.매표소에서 月牙川까지 기대했든 낙타를 타고 간다. 이곳 낙타는 쌍봉이라 타기가 쉬운데 중동의 단봉 낙타를 타다가 낙타가 일어설때 잘못하여 떨어질뻔 한 경험 때문에 조심하라고 아는체 한 것이 거짓말 쟁이가 된 셈이다.옛날 생명을 맡기고 실크로드를 횡단한 隊商들의 기분을 느낄까 했드니 모래 언덕을 오르지는 않고 평지로 하여 월아천으로 직행한다.낭만의 환상이 실망으로 변하는 처참함! 21세기에 비단 팔려고 로마로 가는 대상 ?鳴沙山은 동서 40 km ,남북 20km ,모래로만 이루어진 산인데(여태껒 달려온 고비사막은 사구가 안 보이는 평지) 바람이 심하면 모래 흘러내리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다고 하여 명사산,산은 수시로 모양이 변하는데,더구나 제일 낮은 月牙川이 모래에 2,000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것이 기적이다. 설명인즉 흘러 내리는 모래를 上昇氣流가 도로 불어 올려보낸다는 것이다.자연의 오묘함을,인간의 한계를 생각케한다.나중에 코타카람 고속도로에서 만난 독일 대학의 지리학 교수가 설명한것과 같은 얘기다. 월아천에서 돌아 가는 낙타도 몇십 마리가 앉아 대기중인데 아무 낙타나 안된단다.좀전에 타고 온 것이라야 한다고,낙타 주인 찾는데 한참 걸린다.알고 보니 이 낙타 사막 택시도 지입제인 모양이다. 다음은 Silkroad의 highligt인 불교전래의 현장인 莫高窟 차례다.특히 慧超스님의 往五天竺國傳이 보관되어 있다가 불란스 탐험가인 펠리오가 많은 경전과 함께 가져 갔다는 현장이니 가슴 슬레이며 현장을 찾는다. 이 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카메라를 맡겼으나,다행이도 현장 설명 가이드는 한국어가 유창한 중국인이다.이름은 李新이라하고 돈황학의 연구요원이라고 명함을 준다.당초 1,000여개의 석굴이 있었지만 현재는 492의 석굴만 제 모습을 갖고있다.석굴은 승원굴 -前室,主室과 側室로 구성된 복합굴로 우리나라 石窟庵과 같은 형식이고,여기서는 혜초스님도 기거하면서 기행문도 쓰고 불경공부도 하고 한 승방이며,또 다른 단독굴인 예배굴이 있다. AD366년 北魏 때부터 唐나라를 거쳐 元나라때까지 만들어진 석굴은 벽화의 량도 면적으로 45,000평방미터이고 벽화를 늘어 놓으면 서울서 인천까지 가는 량이라니,물론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짧은 시간에 구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비싸게 주고 책과 CD를 사서 공부하기로 한다.나중에 시간 나면 별도로 책에서 발췌 소개 할까한다. 이렇게 많은 석굴이 가능했든 것은 이곳 지질이 礫巖으로 왕모래와 진흙으로 형성되어 굴을 파기가 쉬웠기 때문이다.불상도 彩塑라고 하는 뼈대는 나무와 새기를 감고,그 위에 진흙과 백토를 입히고 마지막으로 채색을 한 것으로 건조한 기후와 굴속이라서 몇천년 동안 보존이 가능 했든 모양이다.불행이도 벽화나 불상이 서구 탐험가들의 손으로 떼어져 낙타에 실려 유럽으로 반출된 불운도 이와같은 구조 때문에 쉽게 칼로 박리가 가능 했든 것이다.그나마 2차대전때 대부분 소실되어 버렸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249호굴에 있는 유명한 수렵도는 고구려 벽회의 그림과 유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3시 40분에 돈황 박물관을 관람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기원전 2~3세기 때의 실크가 보존되어있다.기하학적 무늬가 있는가 하면 수렵도의 나염 솜씨가 현재 패숀을 보는것 같아 놀라울 뿐이다.이곳의 강수량이 적은 건조한 기후 덕을 톡톡히 보는것 같다.트루판으로 가기 위해 둔황 기차역으로 간다.2시간 걸리는 옛 柳圓역이다. 외국인에게 헛갈려서 아예 이름을 둔황으로 바꾸었다. 중국인들의 실리적인 사고를 엿볼수 있다. 가는 길이 사막 한가운데로 아스팔트 길이 지루하게 일직선이다.더위 때문에 신기루 현상으로 멀리 푸른 산이 보이지만 사실은 작은 관목이 모여서 숲처럼 보이는 것이 가서 보면 없어진다. 중국인 아줌마 가이드 Ms.Bai가 오늘 아침 늦잠 자고 15분 출발이 늦었다고 사죄하는 의미로 백주 2병을 기차에서 먹으라고 자기 돈으로 산다.책임감이 가상하여 내가 따로 봉투에 돈을 넣어 고맙다고 별도로 전달한다. 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남아 일부는 사막의 모래가 뭍은 구두도 오랫만에 닦고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마침 회족이 있길래 스케치를 하니 이 영감 내가 이상한지 와서 본다.아찔..다행이 무표정하게 그냥 보고 가는것이 별것 아니네 하고 생각한 모양이다. 저녁 7시 41분발 침대 열차다.준비한 도시락과 백주와 하밀로 디저트 파티를 거창하게 벌리고 취침. 새벽 2시에 급해서 일어나 화장실엘 가니 앞 손님이 한 15분 기다려도 나올 생각을 안 한다.인내도 한계가 있어 문을 노크하니,마침 하차할려고 기다리든 여인이 중국말로 한참 떠드는데,육감적으로 정차에 대비하여 문을 잠구었다는 표현? 그래 기차가 정차할때 까지 기다리자. 그러나 끝도 없다.한 30분을 기다려도 역은 멀었다. 뒤는 급하고...조금있으니 여차장이 무거운 우편배낭을 끌고 출입문으로 온다.급한 놈이 샘을 판다고 우편낭을 함께 내려주면서 아부?를 한다.영어가 안 통하니 보디 랭귀지로 한손을 엉덩이 뒤로 대고서 우는 상을하고 또 한손으로 열쇠로 문을 따는 판토마임을 한다.역시 잘 통한다.중국 여행시 반드시 비상용으로 항상 뒷주머니에 화장지를 상비하도록...휴지가 비치되지 않으니.. 그리고 중국 잔돈도..대부분 유료 화장실이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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