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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11월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탐방기 3편
작성일 2017.01.24
작성자 박*일
상품/지역
트레킹히말라야


<혜초여행사 원고>

 

2016년 11월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탐방기

(고쿄 – 촐라 – EBC – 칼라파타르)

 

변호사 박용일

 

제 3편 고쿄에서 촐라 넘고 고락셉,  EBC까지

 

6. 고쿄에서 촐라를 넘어 종글라까지 (7 – 9일째)

  고쿄 리조트에 숙소를 정하고 잠시 쉬다가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고쿄리(5360m)로 향하였습니다. 원래는 다음날 새벽에 오를 예정이었는데 2일 후에 있을 난코스인 촐라를 넘는데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고쿄리에서의 일출을 놓치게 된 아쉬움이 매우 컸습니다. 고쿄리는 고쿄에서 보기에는 길이 가파르지 않아 오르기 쉬워 보였으니 막상 올라보니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르고 또 올라도 빤히 쳐다보이는 정상의 깃발은 조롱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5.000m 고도에서 표고차 570m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고산등정 시 정상을 눈앞에 두고도 오르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실감났습니다. 처음에는 선두에서 기세 좋게 지그재그로 오르다가 후반에는 쉬엄쉬엄 뒤에 처져 올랐습니다. 저 아래 호수들과 그 너머 펼쳐진 빙하와 쿰부 히말라야의 설산을 바라보면서.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내일 건널 예정인 빙하 너머로 사가르마타, 마칼루 등 쿰부 히말과 북쪽의 초오유 등 티베트와의 국경선인 그레이트 히말, 서쪽의 렌조 라(5360m)와 그 너머 고리 샹카르와 로왈링히말 등이 사방에 펼쳐져 있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곳은 다음에 과연 쿰부히말라야 최고의 전망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론리 플래닛이 세계에서 최고의 전망대라고 격찬하여 2003년 카라코럼의 K2 건너편 곤도골로 라(6000m)에 올랐던 감격이 새삼스레 떠올랐고 위대하고 경이로운 대자연의 걸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석양이 기우는 때라 예상보다 바람이 세고 날씨도 싸늘해서 다른 일행들은 서둘러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하기에 바빴는데 가져간 타루초도 걸고 한반도 통일과 프리 티베트를 위한 기도를 드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는데 백만 촛불이 타오를 서울 광화문 광장을 떠올리며 실질적인 민주화를 절실히 염원하였습니다. 하산 길도 끝없이 길고 힘들었으나 저 아래 파란 호수들과 석양에 물들어가는 히말의 설산들을 보면서 정상에서의 감동을 이어 나가니 육체적 고난은 정신적 환희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제야 힘들게 올라오는 트레커들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였습니다.

  마지막 석양빛이 먼 설산들에 분홍빛을 띄우며 주위가 어둑해져서야 숙소로 돌아와 곧장 저녁식사를 하자니 피곤함에 밥맛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수고하는 요리사들의 고마움에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한 후 귀한 누룽지와 석류까지 먹으니 어느새 피곤은 싹 가시고 힘이 절로 났습니다. 식사 후 어둑한 호숫가를 거닐며 넓게 펼쳐진 하늘의 영롱한 별들을 보니 정말 별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전날 일정의 변경으로 여유가 많아 새벽에 일어나 호수에서 가까운 산비탈 길을 따라 렌조 라 쪽으로 올라가다가 호수로 흘러드는 개울가로 내려갔더니 그곳에서 밤을 샌 듯한 물새 한 쌍이 놀란 듯 날아올라 저를 더 놀라게 하였습니다. 호숫가 백사장에는 새 발자국만 있고 개울에 얼음까지 얼어있어 전인미답인 곳에 와 있는 듯 하였습니다. 햇살이 동녘 산을 넘어오자 흰 물안개가 피어올라 조용한 호수의 아침을 깨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저 산 위 렌조 라를 넘어 예전에 다녀온 타메로 가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쿰부히말라야의 매니어 트레카들은 콩마 라–촐 라-렌조 라를 잇는 3대 패스를 한꺼번에 넘는 것을 꿈꾸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꼭 도전해 볼 작정입니다.

  오늘 일정은 고쿄에서 촐라 아래 마을 드라그나그까지 비교적 짧은 거리였는데 고쿄 뒤 언덕너머에서 곧장 넓고 험준한 고줌바빙하를 건너는 매우 힘든 코스였습니다. 이 빙하는 초오유 등 네팔과 티베트 경계를 이루는 대히말라야 에서 발원한 것으로 EBC 부근의 쿰부빙하와 더불어 이번 여행 중 마주한 최대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대는 빙퇴석 지대로 빙하수는 지하로 흐르고 지표면에는 돌등이 쌓여있고 곳곳에 얼음이 언 큰 웅덩이들이 보였으며 가끔 얼음 등이 부서져 내리는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 이곳이 빙하지대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길은 곳곳에 돌무더기를 쌓아 표시하고 있지만 혼자라면 자칫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인 곳이었습니다. 제가 이제껏 만나 본 빙하들 중 가장 길었던, K2 가는 길의 발토르빙하는 3일간 빙하를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번 빙하는 한나절 가로질러 넘기만 하면 되었으나 빙하 가운데 있는 돌무더기 언덕들을 오르내리는 길은 매우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빙하를 건너고 좌우로 촐로와 촐라체 등 만년 설산들을 바라보면서 가려니 드디어 거대한 히말라야 품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당에 태양열 집광기들이 있는 드라그나그의 촐라패스 리조트에 일찍 당도하여 내일 촐라를 넘는 결전의 날을 위해 서둘러 식사도 마치고 휴식을 충분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빙하 자락의 촐라 아래 첫 마을인 이곳에서 초저녁부터 잠을 청할 수 없어 밤늦게까지 마당가의 의자에 앉아 찬란한 은하수를 눈이 시리도록 올려다보았습니다. 여름의 대표적 별자리인 직녀 견우 백조자리의 대 삼각형과 카시오페아가 은하수의 주인공들인 양 빛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새벽 3시경에 일어나 짐을 다시 꾸렸는데 죠들이 촐라를 넘을 수 없어 포터들이 등짐으로 날라야 하고 나머지 짐은 말 편으로 보내어 2일 후 고락셉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며칠 전부터 소형 등산배낭에 카메라, 윈드자켓, 물통, 간식 등 최소한 물건만 넣고 다녀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포터들은 물론 다른 일행들에게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힘든 여정에 등짐을 가볍게 하는 것이 제일 긴요한 일이어서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새벽 4시경 헤드램프를 켜고 싸늘한 새벽공기를 맞으며 촐라를 향하는 일행들의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며칠전 혜초의 앞선 팀들 중 일부만 촐라를 넘는데 성공하였고 외국 트레커들은 우리와는 반대로 촐라를 넘어왔고 우리 팀만 새벽길을 나섰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근래에는 대부분 칼라파타르나 EBC를 먼저 갔다가 촐라를 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라고 하였습니다. 주된 목적지인 EBC 등을 먼저 가고자 하는 마음에다가 촐라의 서쪽 면이 더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촐라 아래까지는 2시간여 어둠 속에서 황무지인 듯한 곳을 꾸준히 나아갔는데 촐라가 저만치 보이는 곳에서는 주위의 높은 산에 첫 햇살이 퍼지지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얼었던 몸과 마음도 녹으면서 편해졌으나 저 높은, 돌길인 고갯길을 오를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미 5.000m가 넘는 고지인데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광을 사진에 담기 바쁘다보니 뒤에 쳐져서 저만치 앞서간 일행들을 뒤 따라 가려니 힘이 두 배나 들었습니다. 그래도 일행들이 모두 잘 가고 있어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촐라 바로 아래부터 고갯마루까지는 가파른 돌길의 연속이었는데 그동안 쌓인 피로와 수면부족과 부실한 아침식사 탓인지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비상식인 초코렛, 과자 등과 따뜻한 물을 수시로 먹고 마시면서 안간힘을 내보았습니다. 힘들여 고도를 높일수록 전망이 더욱 좋아져 북쪽의 캉충과 촐로는 물론 멀리 초오유가 찬란히 빛나 힘을 북돋우어 주었습니다. 고개 아래서 1시간여 올랐을까 고갯마루(5420m)에 반가운 타루초가 햇살에 빛나고 있고 먼저 오른 일행들의 반가운 소리가 들려와 마지막 힘을 내어 마루에 올라서니 눈앞에는 흰색의 신천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고갯마루에는 타루초와 룽다가 많이 걸려 있어 남체 티베트 가게에서 사온 것들을 걸면서 이곳에 설 수 있게 한 사가르마타 산신들과 진리의 화신인 부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일행보다 늦게 도착하여 고갯마루에 머문 것은 불과 10여분 뿐이어서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저 아래로 펼쳐진 흰 눈의 세계는 힘들게 올라온 서쪽 사면의 어둠의 세계에 비해 너무나 찬란하였습니다. 계곡 너머로 로부체(6145m) 연봉의 설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고 그 너머로 푸모리(7165m), 눕체(7861m)와 로체(8414m) 및 그 사이에 있는 사가르마타는 물론 그 너머의 마칼루(8465m)가 장대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또한 오른쪽 가까이로는 콩마체, 추쿵리, 아마 다블람이 차례로 보여 꿈에 그리던 곳 다웠습니다. 이곳이 고쿄리와 더불어 쿰부히말라야의 최고의 전망대임을 실감케 하였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얼어붙은 눈길이라 준비해간 구식 아이젠을 꺼내 요리사 디팍의 도움을 받아 신다가 미끌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별 탈이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뒤에 쳐져 눈길을 혼자서 내려오면서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아이젠을 벗을 때도 잘 벗겨지지 않아 고생하여서 필수 장비의 중요성 새삼 실감하였습니다. 새것을 사라고 강조한 아내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매우 후회가 되었습니다. 길고 긴 하산 길도 가파른 바위 길로 매우 힘들었지만 햇볕이 따스히 비추고 아래의 시원스런 계곡과 오른쪽에 보이는 아라캄체, 촐라체와 타부체의 설산들이 연이어 있어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2시간 여 산비탈 바위 길을 내려오니 길은 개울물가의 평탄한 길로 바뀌었고 얼마 후 오늘의 목적지 종글라(4830m)의 종글라인 호텔에 도착하였습니다. 드디어 촐라를 넘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꿈과 같이 느껴졌고 일행들 모두 무사히 넘어온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늦게까지 영국, 호주 트레커들과 어울려 촐라를 넘는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고 밖에 나가 별들의 향연을 즐기다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7. 종글라에서 고락셉까지 (EBC 다녀옴, 10일째)

  칼라파타르 아랫마을 고락셉(5240m)까지 가는 일정에다 혼자서라도 사가르마타 베이스캠프(EBC)를 갈 작정이어서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 할 날이었습니다. 종글라를 떠나 건너편 산비탈을 들어서자 나란히 서있는 촐라체(6335m), 다부체(6362m) 북벽의 웅자가 들어왔는데 촐라체 북벽은 거의 수직으로 1,000m 이상 치솟아 있어 보기만 해도 아찔하고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 같았습니다. 한나절과 하산 시에는 줄곧 위 멋진 두봉을 볼 수 있음에 피로도 잊었는데 특히 촐라체 아래의 얼음이 덮힌 호수 촐라초는 고쿄의 제3호수 보다 더 컸으며 한 시간 이상 투클라(더글라)까지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이 호수를 볼 수 있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예전에 EBC로 올라갈 때 딩보체에서 투클라로 올라가고, 페리체로 내려오면서 멀리로만 잠깐씩 볼 수 있어 서운하던 기억이 생생하였습니다. 투클라 못 미쳐서 길은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쿰부빙하의 모레인지대의 황량한 길을 반시간쯤 올라가니 반가운 로부체가 나타났습니다. 로부체에서는 쿰부빙하를 건너 우뚝한 눕체와 오른쪽의 콩마 라(5535m)가 바라보였는데 그곳은 쿰부히말의 3대패스의 하나로 길은 고개를 너머 딩보체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동쪽으로 추쿵을 거쳐 임자체(6189m, 아일랜드피크)로 가게 되는데 예전에 딩보체에서 혼자서 임자체 아래 임자초(5010m)까지 눈 내리는 길을 힘들게 다녀오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로부체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일행들이 쉬는 사이에 포터들과 함께 서둘러 고락셉으로 출발하였는데 혼자서라도 EBC에 다녀올 생각에서 였습니다. 로부체를 떠난 후 왼쪽의 로부체 연봉에서 발원한 로부체 빙하가 쿰부빙하에 합류한 곳을 지나고 이탈리아 빙하 연구센터와 롯지가 있는 피라미트를 지나 고도를 높이니 로부체 패스(5110m)가 나타났습니다. 전방에 너무나 멋진 푸모리봉의 정상이 낯을 드러냈고 오른쪽에는 눕체의 지맥들이 우람하게 굽어보고 있어 쿰부히말의 막바지에 들어섰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얼마 후 푸모리봉의 전모와 함께 그 아래 우리의 최종목표인 검은색의 칼라파타르가 보였고 이어 그 산 아래 모래벌판 한 쪽에 들어선 고락셉의 건물들이 보여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3시경 히말라야 롯지에 도착하자말자 쿠마르와 디팍의 억지 승낙을 받고 쿡 보조원과 둘이서 EBC로 출발하였습니다. 다른 일행들은 갈 엄두를 못내는 것 같아 동행을 제안할 수 도 없었는데 실상은 낙오라도 하면 어쩔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 내내 일행들과 떨어져 다닐 때가 많아 자유로웠고 이제 자이언트들로 둘러싸인 히말라야란 대자연의 전당에서 홀로 성소로 향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기쁘고 가슴 벅찼습니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호수였을 모래 길을 건너 자그만 언덕을 넘자 건너편 눕체 서면 아래 펼쳐진 거대한 빙탑들이 쿰부빙하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미 남체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면서 세계 최고봉을 몇 번이나 보았으나 이렇게 가까이서 쳐다보니 색다른 기분이었습니다. 눕체연봉 뒤쪽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는 듯한 사가르마타는 푸른 하늘 높이 치솟아 있어 도저히 사람이 오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저곳을 오르기 전까지 현지인들은 저곳을 신의 영역으로 생각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지난해의 큰 지진으로 베이스캠프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하였으나 변화된 실제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지진은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한 시간여 더 올라가야 하는 서쿰부빙하 입구에 위치한 새로운 베이스캠프 부근에서 일어나서 이곳은 지진의 영향을 덜 받은 것 같았습니다. 건너편 눕체의 가파른 설사면에서 굉음을 내며 눈사태가 나는 것을 2-3차례 볼 수 있었는데 만약 저곳에 있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였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대자연의 위용에 압도된 채 나아가기를 2시간여, 멀리 빙하 한가운데 바위 무더기위에 오색의 타루초가 걸려있는 것을 보니 목적지인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였음을 알려주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빙하를 가로질러 그곳에 도착하니 돌무덤 모습도 바뀌고 BC 표지석도 생소하여 BC 위치가 바뀐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옛 BC의 흔적은 찾을 수 없어 섭섭하였습니다. 그곳에 몬조에서 처음 만났던 캐나다인 가족들만 있어 반가웠고 같이 기념사진도 찍으며 감격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타루초를 걸고 엎드려 절을 하려니 이곳에 이렇게 있을 수 있음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사가르마타 등 주위의 산들은 석양에 붉게 물들고 저녁노을에 물든 구름도 북녘하늘에 넓게 드리워 있는 것을 보면서 2, 30분을 더 머물렀습니다.
이곳에서의 감동이 이러한데 정상에 선 수많은 산악인들의 감동은 어찌하였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렸고 목숨을 걸고라도 정상에 오르려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만 하였습니다. 2-3시간만 여유가 있다면 저 위쪽의 새로운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시즌이 지나 캠프 터는 비어있을 것이나 그곳은 웨스트쿰빙하의 시작지점이라 빙하의 진면목은 물론 사가르마타 정상을 향한 산악인들의 마음을 더 느껴보고, 지난해 지진의 흔적을 보고 싶었습니다.

  큰 아쉬움을 남기고 이미 어두워지는 길을 되돌아 나서려니 마음은 바빠졌으나 잔빛이 남은 주위의 설산들과 한 쪽의 빙탑들을 자꾸만 돌아보게 되었고 눈빛과 별빛 가득한 그곳에서 서둘러 내려왔습니다. 한 시간 쯤 내려왔을까 저만치서 마중 나온 포터 2명을 만나 무척 고맙고 반가웠으나 정작 필요한 따끈한 물조차 없이 와 한편으로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롯지에 돌아오니 가이드와 쿡 등이 반가이 맞아주었고 일행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내일 등반을 위해 일찍이 방에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혼자서 식사를 하려니 미안하기도 하여 베이스캠프를 오가며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니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가이드와 상의하여 동행한 쿡보조에게 보너스로 약간의 돈을 주었고 EBC로 가는 길에 빌려준 윗도리를 도로 받으려니 미안하였습니다. 루크라에서 헤어질 때 그 옷 대신 오리털 잠바를 주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8. 대망의 칼라파타르(5550m)에 오름(11일 째)

  다음날도 새벽 3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후 4시경에 대망의 칼라파타르로 향하였습니다. 어제 EBC를 다녀온 탓인지 몸이 매우 무거워 일행들 맨 뒤에서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주위는 어둠에 쌓여 적막하고 건너편 눕체, 창체 등의 실루엣과 찬란한 새벽별들이 태고의 모습인양 빛나고 있어 몽롱한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습니다. 1시간여 올랐을까 눕체 왼쪽 너머에서 사가르마타의 삼각형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여 오르던 길을 멈추고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7년 만에, 어제에 이어 또 다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이 지구상의 3극지인 곳을 볼 수 있다니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와 감동이 치밀어 올라 끝내 눈물로 변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계속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기를 1시간여, 주위는 신비스런 여명에 이어 찬란한 새날의 햇빛에 이 세상에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웅자를 펼쳐보였습니다. 건너편의 눈에 익은 사가르마타의 검은 피라밋 정상을 비롯하여 오른쪽에 로체, 눕체봉들은 물론 왼쪽 가까이 로 라(6026m), 쿰부체(6665m)와 그 너머에 창체(7550m)가 우뚝 솟아 있어 이곳이 세계의 지붕임이 실감났습니다. 목적지인 칼라파타르 정상을 향하여 안간힘을 쓰면서 지그재그로 올라가니 시야는 점점 넓어져 저 아래 넓게 펼쳐진 쿰부빙하와 그 너머로 동쪽의 설산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일 꼴찌로 큰 바위들과 타루초와 룽다가 가득한 정상에 올라서니 뒤쪽의 우람한 푸모리(7161m)가 아침햇살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으며 건너편 사가르마타의 피라밋봉은 더욱 크고 뚜렷하게 닥아 왔으며 저 아래 빙하 너머 아마다블람과 타부체 등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내려간 일행들 뒤에 남아 준비해 간 타루초를 힘들게 걸면서 나만의 의식을 치루었고 큰 바위 아래 한쪽에서 찬바람에 몸을 숨기고 이곳에 선 감동을 새겨보았습니다. 2005년 티베트 쪽 베이스캠프에서도 세계최고봉인 저곳을 만났으니 제 생애 중 이것만으로도 큰 행운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큰 감동을 안고 혼자서 천천히 내려오면서 여러 차례 멈추어 서서 숨을 죽이고 사가르마타 등 주위의 장엄한 설산들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습니다. 이곳의 너무나 신선한 대기의 기운과 함께. 예전에는 이곳에서 마라토너들과 어울려 함께 뛰듯 흉내를 내었는데 이제는 이곳에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 드니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제야 올라오는 트레커들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면서 여유를 부리는 동안 어느덧 고락셉에 도착, 하산을 서두르려니 아쉬움이 컸습니다.

 

(제 4편으로 계속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