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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도전, 그것은 내 삶의 사랑법
작성일 2013.08.06

People & Life_ 석채언


도전, 그것은 내 삶의 사랑법

사는 일이 어쩌면 느끼고 꿈꾸는 게 전부라면, 강렬하게 느끼고 꿈꾸고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도의 감각 추구를 위한 가장 강력한 도전은 무엇일까. 아마도 목숨까지 내 건 도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미치자 ‘혜초여행사’의 수장 석채언 대표가 떠올랐다. 스스로가 전문등반의 길을 걷다가 국내 최초로 탐험과 문화,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설립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서비스하고 있는 사람. 도전이라는 화두와 잘 어울릴 법했다.

인터뷰 얘길 꺼내면 응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대뜸 2시간만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만나기로 약속한 날. 때마침 겨울비가 내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비가 오는 날, 내리는 빗줄기 따라 마음도 수직강하하며 마음이 촉촉해진다. 따라서 비는 술과 함께 가장 좋은 대화의 촉매제라는 것을 알기에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온 몸으로 부딪쳐 느끼는 삶

오랜만의 만남이라 안부인사가 길어진다. 만남의 목적을 밝히니, 자신은 도전이라는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려 든다. 국내외 거느리고 있는 식솔 30여명을 책임지는 것도 버거운 상황인데 무슨 도전을 운운할 자격이 되는 사람이냐며 멋쩍어 한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그러나 비와 술을 미끼로 한 회유와 설득한 끝에 그는 마음을 열었다.

내가 아는 한 석채언 대표는 타고난 도전가다. 17세에 전문 등반 세계에 입문해, 24세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에 도전하고, 28세에 네팔로 이주해 새 삶에 도전하고, 32세에 국내 최초의 트레킹 여행 사업에 도전하고, 50세 현재 흑산도 리조트 사업에 도전 중이다.

무엇이 그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했을까. 후회 없는 삶, 보다 나은 삶, 보다 행복해지기 위한 삶을 위해서라고 한다. 때때로 걸어온 길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수 있으나 결코 후회나 미련은 없다고. 한번 선택을 하면 과단성 있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 때문인지 그는 산악인으로서, 사업가로서 모두 정상을 밟았다.


도전사의 첫 페이지

학창시절 학교 일대를 휘어잡던 한주먹(?) 그의 타고난 도전적 성향에 불을 지핀 것은 산과의 만남이었다.
“1977년 고등학교 입학 후 보이스카우트에 가입하려고 했는데 인원모집이 끝난 상태였어요. 그래서 산악부가 있어 비슷한 곳인 줄 알고 가입했죠. 그런데 양정산악부는 특수부대 훈련에 버금가는 혹독한 훈련과 엄격한 규율로 유명하던 곳이었어요. 3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북한산과 도봉산 깊숙한 곳을 걷고, 방학이면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을 15~20일 등반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산악부를 탈퇴하려 맘먹었단다. 그러나 선배들의 만류와 강압에 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어느 날 덜커덕 산의 맛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산이 험할수록 가슴 설레고, 쓰디쓴 고생 뒤 밀려드는 달콤한 맛을... “북한산 우이암에서 힘겹게 바위를 타고 난 다음날이었어요. 학교 조례시간에 서 있는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느낀 경험을 한 학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은밀한 기쁨과 함께 자부심이 생겼어요.”

그는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을 맛보고, 고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산이 험난하면 험난할수록 가슴이 뛰는 소위 니체적 인간이었다. 산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그를 끌어안아주고 순화시켜 줬고, 산악부 선배들은 포기를 모르는 도전 정신을 심어줬다. “산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이자, 배움터였죠. 수직 벽과 설벽을 오르면서 불가능은 없다는 인간 능력의 무한함을 느꼈고, 고난을 이겨내야만 정상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산에 매료된 그는 전문 산악인의 길로 들어섰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은 하나 둘씩 산을 떠나 세상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는 서울시 산악연맹 산악 구조대로 활동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국내 뛰어난 전문 등반가들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전문등반의 묘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고산 등반이나, 암벽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동소이하다. 힘들고 고생스러운데 굳이 왜 그런 오름짓(?)을 하냐는 거다. 왜 에베레스트에 등반하려고 하는가라는 기자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영국인 산악인 조지 리 말로리는 “산이 거기 있어서”라고 답했다. 귀찮아서 대충 내뱉은 이 말은 우리가 사는 이유를 알 수 없듯 등반을 추구하는 것도 결코 알 수 없음을 훌륭히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석채언 대표가 산을 올랐던 이유는 삶에 대한 본능이었고 애착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있을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도전과 실패, 그리고 새로운 도전

석채언 대표는 지속적인 등반 덕에 1984년 세계 모든 산악인의 꿈이라 할 수 있는 세계 최고봉 등반대에 참가할 수 있는 행운을 얻는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 최연소 참가대원이었다. 그러나 역시 세계 최고봉은 쉽게 정상을 허락지 않았다. 특히나 국내 최초로 겨울에 시도한 에베레스트 등반이라 극한 추위와 고산병에 시달렸고, 등반을 하다 죽은 산악인들의 시신들이 주는 두려움, 추가 임금을 요구하는 셀파들의 파업까지 겹쳐 정상에 서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실패의 쓴 맛을 본 그는 귀국하자마자 또 다시 강가푸르나(7,445m) 원정을 계획했다. 그는 이것이 인생에 있어 가장 무모한 도전이자, 최고의 도전으로 꼽았다.
“스폰서도 없이 감행한 원정이라 대장과 둘이 대원들 몰래 장사를 해서 어렵게 원정비를 마련했어요. 다행히도 강가푸르나 등반 초반은 무리 없이 진행됐어요. 그런데 캬라반 7일째 되는 날 해발 4,000m 지점을 통과하는데 눈이 내리자, 포터들이 더 이상 가기를 주저하더군요. 에베레스트 등정실패의 악몽이 떠오르며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포터들의 임금이 담긴 배낭을 메고 제가 먼저 앞서 걷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80여명의 포터들이 나를 따라왔고, 다행히 사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석채언 대표는 25일간의 계속된 등반 끝에 마지막 캠프에 이르렀고, 다음날 새벽 정상을 올랐다. 예상은 했지만, 주위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정상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끝났다는 느낌뿐이었다고 한다.
“헤르만 불이 히말라야의 거봉 ‘낭가파르바트’를 인류 최초로 단독 등정한 후 돌아왔을 때, 29세의 젊은이가 하룻밤 사이에 노인이 됐다는 말이 이해가 됐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간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제 삶도 일단락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산할 때 폭풍이 불어 죽음의 문턱에서 많은 고뇌를 겪기도 했던 그는 오랫동안 머물렀던 산에서 이제 내려와 세상 속으로 또 다른 발을 내딛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산을 떠나 세상 속으로

공항에서 내렸을 때 집에 갈 차비가 없었을 정도로 빈털터리가 된 그는 귀국 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일을 하고 싶어 산에 자주 가지 않았다. 선배의 권유로 등반과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사에도 취직했다. 그러나 1988년 해외여행 자율화된 상황에서 여행문화나 여행업계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방황 끝에 모든 것을 정리해 정신적인 고향 네팔로 떠났다.

그곳에서 네팔과 인도와 티벳 지역 여행 가이드를 하며, 원 없이 산에도 가고 사람도 만났다. 그러던 중 티벳을 홍보하러 온 중국인을 만나 1990년 중국과 수교 되지 않은 상태에서 티벳을 방문했다.
“4,000미터가 넘는 고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티벳인들의 강인한 삶을 보며 충격을 받았어요. 내 삶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여행문화를 개척해 보자는 또 다른 도전이 꿈틀댔습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오지 탐험과 도전이라는 전문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국내최초의 트레킹 전문여행사 혜초여행사를 설립했습니다. 어려울 거라 예상은 했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기에 더욱 힘들었어요. 나침반도 없이 지도도 없이 나선 격이었지요.”

롤 모델도 없이 무작정 뛰어든 사업은 시행착오와 IMF,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묵묵히 한 걸음씩 전진하는 산악인 정신으로 20여년간 새로운 여행문화를 개척하며 혜초를 국내 최고의 트레킹 전문여행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흑산도 리조트 개발 프로젝트라는 또 다른 도전을 진행 중이다. 자연 친화적인 세계 수준급의 리조트를 만드는 것이 그의 새로운 꿈이자 도전이다.

“도전은 크게 보면 우리네 삶 그 자체죠.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의 도전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요즘은 시스템화 되고 구조화된 도전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죠. 한마디로 승산이 있는 싸움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에게 있어 도전은 불확실성으로 나아가는 가장 가슴 뛰는 삶, 결코 통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쫓는 삶과 동의어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후회스러운 삶이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삶에 대한 전략과 가치관, 정열까지 갖춘 사람은 많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작심삼일 하고 매번 문턱에서 좌절하는 이유는 바로 행동에 옮기는 신체적 활력의 결핍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싸움을 걸어오기 전 내가 선방을 날리는 것은 어떨까. 최상의 방어는 공격이니까.